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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자살일까 타살일까? 독사? 독약?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제거?

by 주릅 2025. 8. 8.

 


고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비극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
그녀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기원전 3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대부분의 기록은 그녀가 스스로 자살을 택했다고 설명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독사(asp)에 물려 자살했다’는 설이죠.
그녀가 독사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받아들고, 자신의 팔에 물리며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이 이야기는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반복 재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죽음에 대해, 최근 들어 다른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까요?
혹시 정치적 암살의 희생양은 아니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다양한 사망설을 소개하고,
역사적 배경과 기록을 바탕으로 그녀의 최후를 다시 고찰해보겠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자살일까 타살일까? 독사? 독약?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제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자살일까 타살일까? 독사? 독약?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제거?

 

 

 

 

전통적 설명: 독사에 의한 자살 설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이야기는 대부분 고대 로마의 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자살 이후,
로마 장군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에게 항복합니다.

이후 로마로 끌려가 전리품처럼 전시당하는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합니다.

그녀는 과일 바구니나 꽃다발 속에 숨겨진 독사(아스프, Asp)를 이용해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버전은 플루타르코스, 디오 카시우스, 수에토니우스 등
로마 제국 시대의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기록되며
중세와 근대까지도 “역사적 사실”처럼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몇 가지 의문점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독사가 인간을 즉시 죽일 수 있는가?
코브라나 살무사 독은 고통은 줄 수 있으나, 몇 시간에 걸쳐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함

클레오파트라의 시신에는 뱀에 물린 자국이 없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즉, 이 설은 상징성과 극적인 서사는 강하지만
고고학적 증거나 생물학적으로는 다소 불명확한 점이 많습니다.

 

 

독약 또는 비밀 약물 사용설

일부 학자들은 독사 대신 독약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이 버전은 비교적 현실적인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당시 이집트와 로마의 약물 지식에 정통했으며,
실제로 다양한 독의 제조와 해독술에 능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종들과 함께 비밀리에 독약을 준비했고,
피해 없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려 했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은 ‘우아한 죽음’을 위해 독약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이 설은:

뱀에 물린 자국 없이 죽은 점,

주변 시종들 역시 함께 죽음을 맞이한 점 등에서
보다 타당성이 있는 설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사료적 근거가 부족하며,
다만 독사 설보다는 과학적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정치적 암살 설: 자살이 아닌 타살?

최근에는 일부 역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암살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즉, 그녀의 죽음이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유는?
클레오파트라가 살아 있다면, 이집트 민중의 저항 상징이 될 수 있었고,

그녀를 로마로 데려가 전시하는 것은 정치적 리스크가 컸습니다.

카이사르의 아들로 추정되는 카이사리온의 존재도 로마 정치에 불안 요소였죠.

따라서 아우구스투스가:

조용히 제거한 뒤, ‘그녀가 스스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설의 핵심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직후 이집트는 즉시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카이사리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살 장면을 직접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다만, 이 암살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며,
로마 제국의 기록이 대부분 사라진 현재,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상징으로서의 죽음: 사실보다 중요한 이야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자살이든, 암살이든,
그녀의 최후는 단순한 생물학적 죽음을 넘어
하나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능해왔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종말,

이집트 독립 왕조의 마지막,

여성 지도자의 몰락,

그리고 사랑과 권력을 동시에 잃은 비극의 여왕이라는 이미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해석하며
그 시대의 문화와 권력, 여성성, 저항,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이용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단순한 “어떻게 죽었는가?”를 넘어
“무엇을 상징하는가?”라는 물음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독사에 물렸다는 전설, 독약 사용설, 조용한 암살설—
모두 설득력은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 질문을 던지며 클레오파트라라는 인물을 다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미녀도, 단순한 로맨스의 주인공도 아닌,
정치적 생존자였고, 전략가였으며, 시대의 전환기에 맞서 싸운 지도자였습니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든,
그 죽음은 제국의 역사를 바꿔 놓았고,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인류사 속 가장 상징적인 최후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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